전병은 얇게 부쳐 만든 과자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처럼 들리지만 조선 시대에는 다양한 음식에 활용되었던 중요한 조리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밀전병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부쳐 만든 음식으로 때로는 담백한 쌈으로 쓰이고 때로는 꿀을 발라 달콤한 후식으로 즐겼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규합총서』 등 고문헌 속 기록을 바탕으로 밀전병의 모습과 조리법 그리고 현대 음식과의 연결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밀전병이란 무엇인가?
밀전병은 이름 그대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부쳐낸 음식입니다. 소금만 넣어 담백하게 만들기도 하고 꿀을 넣어 달콤한 맛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밀전병은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 식사용 밀전병: 소금으로 간을 해서 얇고 담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로 구절판을 싸 먹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 후식용 밀전병: 꿀을 반죽에 섞거나 다 부친 뒤 꿀을 발라 잣가루, 대추채 등을 얹어 말아 만든 달콤한 간식입니다. 꿀전병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즉, 같은 전병이지만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 밥상에서는 쌈이 되었고, 잔칫상에서는 과자가 되었습니다.
2. 『규합총서』와 기록 속 밀전병
조선 후기 여성 실용서인 『규합총서』에는 밀전병의 조리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곱게 친 밀가루를 묽게 풀어... (중략)... 기름을 먹인 솜으로 번철(기름에 지지는 데 쓰는 솥뚜껑)을 자주 닦아 기름이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하여, 반죽을 한 숟가락 떠 놓고 숟가락 밑으로 둥글게 돌려 얇게 부친다. 매우 얇아야 좋으니,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뒤집어 익힌다."
특히 구절판에 쓰이는 전병은 "아주 얇고 부드럽게 부쳐야 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얇게 부친 전병은 속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고기, 채소, 버섯 등 여러 재료를 하나로 잘 감싸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임원십육지』 등의 문헌 속에서도 꿀을 넣어 만든 전병이 기록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병은 식사 후 입가심용 다과로 손님 접대나 잔칫상에 올랐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밀전병이 당시 생활 속에서 얼마나 폭넓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전통 조리법과 특징
전통 방식의 밀전병은 비교적 간단한 재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밀전병 기본 재료]
밀가루, 물, 소금, 기름, 꿀, 잣가루, 대추채
[밀전병 조리법]
1. 밀가루와 물을 섞어 멍울이 없도록 반죽합니다.
2. 소금을 살짝 넣어 간을 맞춥니다.
3. 번철(팬)을 달군 뒤 기름을 얇게 두르고 반죽을 동그랗게 펼칩니다.
4. 얇고 투명해질 때까지 앞뒤로 빠르게 부칩니다.
5. 구절판 전병으로는 담백하게 활용하고 후식용으로는 꿀을 바른 뒤 잣가루나 대추채를 올려 말아냅니다.
이처럼 밀전병 만드는 법은 단순하지만, 전병을 얼마나 얇고 곱게 부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4. 밀전병이 지닌 의미
밀전병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 구절판에서의 역할: 밀전병은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재료를 조화롭게 묶어주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음식 전체의 균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후식으로서의 가치: 꿀은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꿀전병은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명절과 잔치에서 맛볼 수 있는 귀한 간식이었습니다.
- 생활 속 활용: 전병은 얇고 가벼워 오래 두어도 보관할 수 있었고 휴대하기도 편리했습니다. 그래서 다과상에 올리거나 선물용으로 자주 쓰였습니다.
5. 현대 음식과의 연결점
오늘날 '밀전병'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그 원리는 오늘날 다양한 음식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구절판: 지금도 궁중 요리의 대표로 꼽히는 구절판은 밀전병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음식입니다.
- 퓨전 요리: 멕시코의 토르티야, 서양의 크레페, 랩 샌드위치처럼 얇은 반죽으로 속을 감싸는 요리들은 모두 밀전병과 같은 원리를 공유합니다.
- 전통 과자: 시장에서 판매되는 깨전병, 조청전병 같은 간식은 꿀전병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 현대식 전병입니다.
즉, 이름은 달라졌어도 밀전병의 쓰임새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밀전병은 담백하게는 구절판의 쌈이 되고, 달콤하게는 꿀과자가 되며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된 음식이었습니다. 얇고 부드럽게 부친 전병 한 장은 조화로운 맛과 정성스러운 환대를 담아낸 전통의 산물이었습니다.
오늘날 구절판을 먹을 때나 전통시장에서 전병 과자를 볼 때, 그 얇은 한 장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생활 문화를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참고 문헌
- 『규합총서』
- 『산가요록』
- 『임원십육지』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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