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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전통 음식

조선 선비들의 해장국은 무엇이었을까? '풍'을 막는 방풍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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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막는다'는 뜻을 가진 비범한 이름의 식물인 '방풍'.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 식물의 뿌리를 약으로 먹고, 봄에 돋아나는 연한 잎과 줄기는 나물로 먹으며 건강을 지켜왔습니다. 특히 이 향긋한 방풍나물을 넣고 끓여낸 방풍탕은 감기 기운을 물리치는 보양식이었고 과음으로 지친 속을 풀어주는 시원한 해장국으로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 '방풍탕'이라는 이름은 사용하는 재료와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명확히 나뉩니다.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 기록된 것은 잎을 사용한 '음식'이고, 허준이 쓴『동의보감』에 기록된 것은 뿌리를 쓴 '약'입니다. 지금부터 이 두 기록을 넘나들며 이름 그대로 '풍사'를 막아 우리 몸을 지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깊이 있게 설명하겠습니다.


1. 방풍탕이란 무엇인가?


방풍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풍'에 대한 한의학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의학적으로 풍은 바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기운인 '풍사'를 의미합니다. 풍사는 감기처럼 갑자기 오거나 증상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고 어지럼증이나 통증을 유발하는 병의 원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방풍탕은 바로 이 풍사를 막고 몰아내는 데 목적을 둔 음식과 약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방풍탕은 사용하는 부위와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명확히 나뉩니다.

식으로서의 방풍탕: 방풍나물(잎과 줄기)을 주재료로 하여 조갯살, 쇠고기 등을 넣고 된장이나 맑은 장으로 끓여낸 '국' 또는 '탕'입니다. 이는 일상에서 즐기는 해장국이나 보양식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풍탕, 바람을 막아 병을 다스리다



약으로서의 방풍탕: 방풍 뿌리(한약재)를 군약(핵심 약재)으로 하여 다른 약재들과 함께 달여낸 '탕약'입니다. 이는 감기몸살, 두통, 중풍 초기 증상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진 처방입니다.


2. 역사 기록으로 본 약과 음식의 경계


두 가지 방풍탕의 모습은 각기 다른 고문헌에서 그 역할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먼저 약으로서의 방풍탕은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에 그 중요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방풍 뿌리가 "36가지 풍증을 치료하며, 오장육부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눈을 맑게 하고, 온몸의 뼈마디가 아픈 풍습을 낫게 한다"고 극찬합니다. 이 때문에 방풍은 몸살감기과 통증을 치료하는 유명한 처방인 '형방패독산' 등 수많은 탕약의 핵심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음식으로서의 방풍탕은 19세기 여성 생활문화 총서인 『규합총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방풍의 연한 싹인 '방풍나물'을 이용한 국 조리법을 소개하면서 "조갯살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이면 그 맛이 매우 시원하고 향기롭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방풍이 약재를 넘어 그 향과 맛을 즐기는 일상적인 '음식'으로도 널리 사랑받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3. 한의학적으로 본 방풍탕의 효능


그렇다면 방풍탕은 구체적으로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약으로서의 방풍탕은 한의학적 표현으로 '해표거풍'의 효능을 가집니다.

'해표'는 몸의 표면에 있는 병의 기운을 땀 등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는 뜻이고, '거풍'은 풍사를 몰아낸다는 뜻입니다. 즉, 감기 초기의 오한, 발열, 두통, 전신 통증 등의 증상이 있을 때 방풍탕은 몸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쁜 기운을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음식으로서의 방풍탕 역시 이러한 약효의 원리를 따릅니다.
방풍나물 특유의 맵고 향긋한 향은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기 때문에 과음 후의 두통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함께 넣는 조개는 성질이 서늘하여 술로 인해 생긴 몸의 열을 식혀주고, 된장은 소화기를 편안하게 합니다. 즉, 음식 방풍탕은 해장이라는 목적에 맞게 약재의 효능과 식재료의 궁합을 절묘하게 맞춘 과학적인 음식이었습니다.


4. 왜 지금은 보기 힘든 음식이 되었나?


이처럼 지혜로운 음식이었던 방풍탕이 현대에 와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2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식재료의 낮은 인지도입니다. 방풍나물은 쑥이나 냉이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봄나물이 아니며 주로 특정 지역에서만 소비되거나 나물보다는 약초라는 인식이 강해 쉽게 식재료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둘째, 해장국 문화의 변화입니다. 콩나물국밥, 뼈해장국 등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의 해장국들이 대중화되면서 방풍탕의 은은하고 향긋한 맛은 상대적으로 대중의 입맛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5. 마무리


방풍탕은 약과 음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선조들의 건강을 지켜준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뿌리로는 병을 다스리는 효능 좋은 약이 되고, 잎으로는 지친 속을 달래주는 부드러운 음식이 되었던 방풍탕의 이야기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식동원'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비록 지금은 쉽게 맛보기 어렵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이름이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는 지금 우리가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환절기 감기 기운이 있을 때나 혹은 몸이 찌뿌둥할 때 향긋한 방풍나물로 끓인 맑은 탕 한 그릇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약초의 기운과 음식의 온기가 함께하는 그 한 그릇이 우리 몸을 부드럽게 위로해 줄 것입니다.

 

※참고 문헌

 

  • 《동의보감》
  • 《규합총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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