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귀하게 여겨지던 전통 떡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석이편'입니다. '규합총서'에 기록된 석이편은 바위에서 자라는 귀한 버섯인 석이버섯을 갈아 넣어 만든 편(시루떡)으로 약선의 성격을 지닌 건강식 떡이었습니다. 오늘날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힘든 이 전통 떡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음식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석이편이란 무엇인가?
석이편은 이름 그대로 ‘석이’를 넣어 만든 ‘편(떡)’을 뜻합니다. 여기서 석이버섯은 일반적인 버섯과 달리 깊은 산속 바위에 귀 모양처럼 붙어 자라는 귀한 재료입니다. 채취가 어렵고 양도 많지 않아 예로부터 귀족이나 양반가에서나 맛볼 수 있던 특별한 식재료였습니다.
석이버섯은 미지근한 물에 오랫동안 불려야 부드러워지고 돌이나 모래 같은 이물질을 여러 차례 씻어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손질한 석이를 곱게 다져 멥쌀가루와 함께 시루에 안쳐 찌면 석이편이 완성됩니다.
완성된 석이편은 흰 멥쌀가루의 바탕 위에 검은 석이 가루가 고르게 퍼져 마치 수묵화 같은 은은한 멋을 풍깁니다. 쫄깃한 쌀떡의 식감과 더불어 석이버섯 특유의 은근한 쌉싸래한 맛과 향긋한 풍미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고급스러운 전통 떡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기록 속 석이편과 약선 음식의 가치
석이편은 19세기 초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규합총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건강을 고려한 약선 음식으로 대접받았음을 보여줍니다.
한의학에서는 석이버섯이 서늘한 성질을 지녀 체내의 열을 내려주고 위장을 보호하며 기력을 보강하는 효능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지혈 작용도 있어 상처나 출혈성 질환에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선조들은 이렇게 귀한 약재를 일상 음식인 떡에 활용하여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는 전통 음식 문화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양반가에서 석이편은 단순한 다과가 아니라 손님 접대나 잔치상에도 오르던 특별한 떡이었으며 자연의 기운을 담아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3. 석이편의 전통 조리법
석이편은 귀한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조리 과정 또한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갑니다.
- 주재료: 멥쌀가루, 석이버섯
- 부재료: 꿀 또는 설탕, 소금, 잣, 대추채
조리 과정
1. 석이버섯 손질: 건조된 석이버섯을 미지근한 물에 충분히 불려 배꼽 부분을 도려내고, 여러 번 헹궈 흙과 모래를 완벽히 제거합니다.
2. 가루 만들기: 깨끗이 씻은 석이버섯을 곱게 다지거나 빻아 가루로 만듭니다.
3. 쌀가루 섞기: 멥쌀가루에 소금과 약간의 꿀(또는 설탕)을 넣고, 석이 가루를 함께 섞어 줍니다.
4. 찜: 시루에 안친 뒤 김이 오를 때까지 푹 쪄냅니다.
5. 마무리: 다 쪄낸 뒤 잣가루나 채 썬 대추를 올려 장식하면 완성입니다.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기에 오늘날의 '간단한 떡'과는 다른 품격을 지닌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왜 오늘날에는 보기 힘들까?
석이편은 조선 시대에는 귀한 약선 떡으로 사랑받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거의 사라진 음식이 되었습니다.
첫째, 주재료인 석이버섯의 희소성입니다. 깨끗한 자연환경에서만 자라는 석이버섯은 채취가 어려울 뿐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해 그 양이 크게 줄었습니다.
둘째, 까다로운 손질 과정입니다. 석이를 불리고 다듬는 과정이 번거롭다 보니 현대인의 생활 방식과는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 대체 식재료의 등장입니다. 영양가 높은 다양한 버섯이나 건강식 재료들이 등장하면서 석이편은 점차 잊힌 음식이 되었습니다.
5. 석이편이 주는 의미
비록 오늘날 직접 맛보기는 쉽지 않지만 석이편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을 담아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이편은 음식의 미학적 가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흰 쌀 위에 점점이 박힌 검은 석이의 모습은 수묵화를 연상케 하며 선조들의 섬세한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풍류와 미학을 중시했던 전통문화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마무리
석이편은 바위에서 자라는 귀한 석이버섯을 사용해 만든 떡으로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건강과 격조를 함께 담아내던 전통 떡이었습니다. '규합총서'에 기록된 조리법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오늘날에도 다시금 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은 쉽게 맛볼 수 없지만 석이편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식문화는 풍요로워집니다. 전통 음식의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더욱 건강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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