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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전통 음식

붉은 빛에 담긴 길상의 맛, 대추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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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대추로 만든 떡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명절이나 큰 의례의 자리에 오르는 떡 중에 오늘날은 거의 볼 수 없게 된 특별한 떡이 있습니다. 바로 '대추편'입니다.

 

이름 그대로 대추를 주재료로 삼아 만든 절편의 한 종류로『규합총서』를 비롯한 조선 후기 고조리서에는 “대추즙과 찹쌀가루를 익혀 굳힌 떡”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간식으로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대추의 붉은빛과 그 속에 담긴 의미 때문에 길상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떡으로 자리했던 대추편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대추편이란 무엇인가?


대추편은 찹쌀가루에 대추즙을 고루 섞어 찐 다음 굳혀 절편처럼 만든 떡입니다. 쫀득한 식감 속에 은은한 단맛이 배어 있고 무엇보다 붉은 빛을 띤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일반 절편이 단순히 찹쌀의 맛을 살린 흰 떡이라면 대추편은 대추즙이 더해져 고운 붉은빛을 머금으면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대추편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거나 혼례·제례 등 중요한 의례상에 올리던 떡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색과 맛, 그리고 대추의 상징성이 어우러진 의례적인 떡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규합총서』가 전하는 조리법


『규합총서』의 「주식의」 편에는 대추편 만드는 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대추를 물에 푹 무르게 삶아 주물러 체에 거른다. 여기에 찹쌀가루와 꿀을 넣고 매우 오래 쳐서 잣가루를 묻혀 썰어 쓴다. (혹은) 찹쌀가루에 (대추 거른 것을) 버무려 찐 다음, 안반에 놓고 매우 쳐서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썰어 쓴다.”

이 기록에서 주목할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꿀의 사용 : 단맛을 내기 위해 꿀을 넣었다는 점은 대추의 은은한 단맛과 함께 천연 감미료로서 건강까지 고려했음을 보여줍니다.

 - 치는 과정 : 떡을 “매우 오래 친다”고 한 부분은 단순히 모양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반죽에 탄력을 더하고 질감을 쫀득하게 만드는 핵심 단계였습니다. 이는 절편이나 인절미에서 볼 수 있는 전통 조리법이기도 합니다.

 - 잣가루의 사용 : 마무리 단계에서 잣가루를 묻혀 고명을 삼은 것은 맛과 향을 높이고 동시에 귀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해줍니다.

즉, 대추편은 단순히 대추즙을 넣은 떡이 아니라 꿀과 잣까지 곁들여 만든 정성과 상징이 깃든 고급 의례 떡이었던 것입니다.

 

 

붉은 빛에 담긴 길상의 맛, 대추편 이야기

 

3. 대추의 상징성과 의미

 

대추는 예로부터 우리 민속에서 길상의 의미가 매우 큰 과일이었습니다. 크고 붉은빛을 띠는 대추는 풍요와 다산, 장수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혼례 때 신방에 대추와 밤을 던져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대추가 “오장을 보호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며 기를 보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대추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약재로서도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추를 갈아 넣어 만든 대추편은 그 자체로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붉은색이 가진 길상적 이미지와 약효가 함께 담겨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오르는 데 더없이 잘 어울렸던 것입니다.

 

4. 대추편과 다른 떡의 차별성

 

조선 후기의 떡 가운데는 절편, 송편, 강정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지만, 대추편은 몇 가지 차별성을 지녔습니다.

 - 흔하게 즐겼던 흰색 위주의 떡에서 벗어나 붉은빛을 강조했습니다.

 - 곡물 본연의 맛에 의존하기보다 대추·꿀·잣 등 고급 부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떡입니다.

 - “치는 과정”을 통해 단단하면서도 쫀득한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대추편은 단순히 절편의 변형이 아니라 독립된 개성과 상징성을 가진 떡이었습니다.


5. 대추편이 가진 현대적 가치


비록 오늘날에는 거의 전승되지 못했지만, 대추편은 현대에도 충분히 재해석할 수 있는 가치가 있습니다.

 - 건강식으로서의 가능성 : 설탕 대신 꿀, 색소 대신 대추즙을 사용했기에 ‘천연 건강 디저트’로 주목받을 수 있습니다.

 - 색과 상징을 활용한 고급 디저트 : 붉은빛은 여전히 경사스러운 의미를 지니므로 혼례나 돌잔치 같은 행사에 맞는 전통 퓨전 디저트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한국 떡의 다양성 확장 : 잘 알려진 송편, 약과 외에도 잊힌 떡을 복원하는 과정은 전통음식 콘텐츠의 폭을 넓혀줍니다.


6. 맺음말


오늘날에는 대추편을 직접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간편한 떡들이 현대인의 식탁을 차지했고 대추를 갈아내는 손길이나 오랜 정성이 요구되는 조리법은 점차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 대추편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대추편은 단순한 전통 떡이 아니라 대추라는 과일의 상징성, 붉은빛의 길상, 그리고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한 조각의 떡이지만 그 속에는 조선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염원이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잊혀진 떡, 대추편을 다시 떠올리며 우리 전통 음식의 다양성과 의미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규합총서》
  • 《동의보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국립농업과학원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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