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매섭게 몰아치던 조선의 겨울철, 궁중에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특별한 ‘약과’를 만들어 왕과 신하의 건강을 챙겼습니다. 오늘은 문헌 속에서 볼 수 있는 궁중 절식 음식, 전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전약이란 어떤 음식인가?
전약은 글자 그대로 ‘달여 만든 약’이라는 뜻을 지닌 궁중 음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약과’라 하면 기름에 튀겨낸 간식을 떠올리지만, 전약은 약과와 조금 다릅니다. 꿀과 찹쌀가루, 참기름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고 오랜 시간 약불에서 달여 굳히는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소가죽을 고아 만든 아교를 넣어 굳히는 독특한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아교는 재료를 단단하게 만들 뿐 아니라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보하는 귀한 약재로도 쓰였습니다. 그래서 전약은 단순한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먹는 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궁중 보양식이자 겨울 한정 별미였습니다.
전약은 주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 무렵 만들어졌습니다. 긴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 몸을 보하고, 동시에 다가올 한 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2. 역사 기록으로 보는 전약
전약의 존재는 『승정원일기』 등 조선 왕실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은 겨울마다 원로 대신들이 모여 있는 '기로소'에 전약을 하사했습니다. 전약에 대해 기록된 대표적인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로소에 올겨울 전약을 각별히 잘 마련하여 나누어 주도록 하라. 기로소 신하들 중 연로하여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또한 나누어 보내도록 하고, 즉시 거행하라. 정원은 이를 잘 알아두라."
『승정원일기』 영조 43년 (1767년) 11월 7일
기로소는 조선시대에 왕이 나이 많은 공신과 대신들에게 예우를 다하던 공간이었는데, 전약을 하사한다는 것은 왕이 신하의 건강을 염려하고 돌보기 위한 목적이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전약이 단순히 겨울철 별미를 넘어 왕이 신하를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고 나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음식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약은 왕실과 신하를 잇는 소통의 매개체이자, 음식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전통문화였습니다.
3. 전약의 재료와 조리법
전약은 귀한 재료와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었습니다. 문헌과 구전 기록을 종합하면 그 조리법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 주재료: 꿀, 찹쌀가루, 참기름, 아교
- 약재: 생강, 계피, 정향, 후추 등 몸을 덥히고 혈액순환을 돕는 재료들
조리법
1. 큰 솥에 꿀과 참기름을 넣고 은은한 불에서 천천히 끓입니다.
2. 끓어오르면 곱게 빻은 한약재와 찹쌀가루를 넣고, 눋지 않도록 계속 저어줍니다.
3. 재료가 고르게 섞이면 마지막에 아교를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달입니다.
4. 걸쭉해진 반죽을 틀에 붓고 서늘한 곳에 두어 하룻밤 굳힙니다.
5. 굳은 전약을 네모나게 썰어 잣가루 등을 뿌려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전약은 꿀의 은은한 단맛에 약재의 향이 더해져 고급스러운 풍미를 냈습니다. 단맛이 강하지 않고 은근한 뒷맛이 남아 왕실의 고령자나 신하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4. 전약이 사라진 이유는?
왕이 직접 하사하던 귀한 음식 전약은 왜 현대에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을까요?
첫째, 재료의 제약입니다. 핵심 재료였던 아교는 소가죽을 오래 달여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약재로 현대에는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아교는 특유의 향이 있어 대중적 입맛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둘째, 번거로운 조리 과정입니다. 전약은 재료를 오래 저어가며 졸여야 하고 완성까지 하루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간편하고 빠른 음식을 선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맞지 않는 조리 방식입니다.
셋째, 문화적 변화입니다. 전약은 맛보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약선'의 개념이 강한 음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맛있는 간식과 건강 기능 식품이 명확히 구분되면서 전약처럼 약과 간식의 경계에 있는 음식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5. 전약이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
비록 지금은 잊혀져 문헌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전약은 여전히 흥미로운 가치를 지닙니다. 전약은 그 당시에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왕이 원로 신하의 안녕을 기원하며 건넨 따뜻한 선물의 개념이 강한 음식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겨울철에 유자차나 꿀차를 마시며 몸을 덥히는 풍습도 전약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몸을 보하는 재료에 달콤함을 더해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 문화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맺음말
전약은 왕의 애민 정신과 나라의 어른을 향한 존경이 담긴 상징적인 보양식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우리는 전약을 직접 맛볼 수는 없지만 전약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왕이 전약을 신하들에게 하사하면서 생각했던 그 따뜻한 마음은 오늘날 우리가 주변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하는 문화로 이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 자료
- 《승정원일기》
- 《동의보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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