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달콤하고 꾸덕꾸덕한 간식인 '약과'. 우리는 약과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약과의 원형인 '유밀과'가 지금의 맛과 완전히 달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조선시대 문헌 속에 기록된 유밀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풍미를 가진 '과자'의 차원을 넘어선 요리였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 『산가요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진짜 꿀과 참기름으로 만들었던 유밀과의 원형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그 맛은 왜 우리 곁에서 사라졌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유밀과란 무엇인가?
유밀과는 한자 뜻 그대로 '기름'과 '꿀'로 만든 '과자'를 의미하는 우리나라 전통 한과의 한 종류입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낸 뒤, 기름에 튀겨 꿀이나 조청에 담가 맛을 낸 모든 과자를 통칭하는 넓은 개념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먹는 약과, 매작과, 타래과 등이 모두 유밀과에 속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약과'입니다. 옛날에는 꿀이 약으로 쓰일 만큼 귀했고, 참기름과 함께 생강, 계피 등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만들었기에 '약'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즉, 유밀과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건강까지 생각하는 보양식의 개념이 담긴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2. 『산가요록』이 기록한 원형의 맛
유밀과의 원형을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15세기 중반 어의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에 남아있습니다. 이 책의 '조과법(과자 만드는 법)' 부분에는 유밀과의 조리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흰 밀가루 한 되에 진짜 기름(참기름) 네 홉, 좋은 꿀 네 홉을 한데 섞고, 생강즙을 넣어 고루 반죽한다. 쟁반 모양이나 혹은 꽃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지져낸다.”
이 짧은 구절은 현대의 약과와 다른 두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첫째는 '진유', 즉 당시 가장 귀했던 '진짜 기름'인 참기름만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감미료로 오직 '호밀', 즉 좋은 꿀만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물엿이나 설탕 시럽이 아닌 순수한 꿀과 참기름의 조합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냈을 것입니다.
3. 원형 유밀과의 조리법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원형 유밀과의 조리 과정을 살펴보면 지극한 정성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 주재료: 밀가루, 최상급 참기름, 순수한 꿀
- 부재료: 생강즙, 계피가루, 후추 등 약재, 청주
- 조리법:
1.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비벼 고운 가루 상태로 만듭니다.
2. 여기에 꿀, 청주, 생강즙 등 약재를 넣고 가볍게 뭉쳐 반죽을 완성합니다.
3. 완성된 반죽을 두껍게 밀어 모양을 찍어내거나 네모나게 썹니다.
4. 낮은 온도의 참기름에서부터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며 반죽을 속까지 천천히 튀겨냅니다.
5. 잘 튀겨진 과자를 건져내어 꿀에 담가 속까지 단맛이 충분히 배도록 재워둡니다. (집청)
6. 마지막으로 잣가루나 계핏가루를 뿌려 완성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밀과는 단순히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향긋하고 깊은 맛과 더불어 건강에도 좋은 고급 과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약재’를 넣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약과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4. 원형의 맛은 왜 사라졌을까?
『산가요록』에 기록된 진짜 유밀과의 맛이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재료의 원가 문제입니다. 오늘날에도 참기름과 천연 꿀은 매우 비싼 식재료입니다. 튀김 기름으로 참기름을 사용하고, 꿀만으로 집청을 하는 것은 대량 생산과 대중화를 위해서는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었습니다. 결국 저렴한 식물성 기름과 물엿, 설탕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입니다. 참기름은 발연점이 낮아 온도 조절이 매우 까다롭고 꿀은 온도에 따라 점성이 크게 변해 다루기 어렵습니다. 숙련된 기술 없이는 원형의 맛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아 점차 더 만들기 쉬운 방식으로 변형되었습니다.
5. 마무리
오늘날 우리가 먹는 약과는 조선시대 유밀과의 명맥을 잇는 소중한 전통 과자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의 흐름과 대중화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 했던 '원형의 맛'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맛볼 수 없지만 『산가요록』 속 유밀과의 기록은 우리에게 음식이란 단순히 맛을 넘어 그 시대의 경제와 문화 그리고 재료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까지 품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추석에 약과를 먹을 때 진짜 꿀과 참기름 향이 가득했던 조선의 유밀과를 상상해 보며 우리 전통 음식의 깊이를 다시 한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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