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은 예로부터 하늘이 내린 영약으로 불리며 그 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양반가에서조차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산삼의 기운을 얻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이름부터 그 비밀을 품고 있는 특별한 전통 보양식, 바로 '섭산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값비싼 재료가 아닌 지혜와 정성으로 건강을 지켰던 선조들의 식문화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섭산삼, 이름에 담긴 지혜로운 뜻
섭산삼은 한자의 의미를 알면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신할 섭(攝)' 자에 '메 산(山)'과 '인삼 삼(蔘)' 자를 써서, 글자 그대로 '산삼을 대신하는 음식'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진짜 산삼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효능을 지닌 재료를 발견하고 산삼처럼 귀하게 조리하여 그 기운을 얻고자 했던 실용적인 지혜가 담긴 이름입니다. 섭산삼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려 했던 선조들의 철학이 담긴 결과물입니다.
2. 『규합총서』 속 양반가의 특별 보양식
섭산삼의 존재는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생활문화 백과사전 『규합총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알아야 할 음식, 바느질, 농사 등의 지식을 상세히 기록한 귀중한 문헌입니다.
『규합총서』는 섭산삼의 조리법을 다음과 같이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덕과 도라지를 연하게 두드려 유장에 주물러 굽는다. 이를 섭산삼이라 한다.”
이 짧은 문장에는 섭산삼의 모든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더덕과 도라지라는 주재료와 '두드린다'는 핵심 조리 기술, 그리고 유장(기름과 간장)을 사용한 양념법까지 명시하며 '섭산삼'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섭산삼이 허례허식보다는 실리를 추구했던 당시 양반가의 식생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보양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산삼의 대체식, 섭산삼의 조리법
섭산삼의 재료는 바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더덕과 도라지였습니다. 선조들은 인삼의 대표 성분인 '사포닌'이 풍부한 두 재료의 영양분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 재료 손질: 껍질을 벗긴 더덕과 도라지는 특유의 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소금물에 잠시 담가 둡니다.
- 연하게 두드리기: 섭산삼 조리법의 핵심 과정으로, 방망이를 이용해 자근자근 두드려 섬유질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양념이 깊숙이 배고 식감이 연해집니다.
- 양념과 숙성: 부드러워진 더덕과 도라지를 꿀과 간장,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에 조심스럽게 발라 재워둡니다. 이는 재료의 쓴맛을 잡고 깊은 풍미를 더하기 위함입니다.
- 굽기: 마지막으로 양념한 더덕과 도라지를 석쇠에 올려 타지 않게 은은한 불에서 구워냅니다.
4. 섭산삼이 잊혀진 이유
이처럼 정성스러운 음식이었던 섭산삼이 현대에 와서 거의 잊혀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잡하고 정성스러운 조리 과정 때문입니다. 단순히 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고 재우는 등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은 바쁜 현대의 조리 방식과는 맞지 않아 점차 기피되었습니다.
둘째, '산삼 대용품'이라는 개념의 약화입니다. 더덕과 도라지가 대중화되면서 '더덕구이', '도라지구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소비되었고, '섭산삼'이라는 특별한 이름과 그 안에 담긴 전통 보양식으로서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셋째, 식문화와 입맛의 변화입니다. 달고 짠 자극적인 양념이 주류가 되면서, 꿀과 간장을 기본으로 한 은은하고 건강한 단맛의 요리는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아진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그렇다고 섭산삼을 현재 아예 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는 섭산삼 향토 음식으로 전해져 내려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음성군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삼과 더덕의 주산지로, 섭산삼의 주재료를 구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그 전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음성군에서는 섭산삼을 지역 대표 향토 음식으로 지정하고 그 가치를 알리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어, 그 맛을 경험할 기회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습니다.
5. 잊혀진 음식, 섭산삼의 현대적 가치
섭산삼은 값비싼 재료에 의존하지 않고 주변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과 정성을 통해 건강을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 그 자체입니다. 이는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려 했던 '약식동원' 사상을 실천한 훌륭한 사례입니다.
비록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 되었지만, 섭산삼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대에 자극적인 음식 대신 더덕과 도라지로 섭산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단순한 더덕구이가 아닌 '산삼을 대신했던 지혜의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담아 식탁에 올린다면 그 한 끼는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잊혀 가는 우리 음식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고 재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 참고 자료
- 《규합총서》 (빙허각 이씨, 180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음성군 향토음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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