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중 요리 중 하나였던 ‘계증’은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진 귀한 전통 닭찜입니다. 이 글에서는 문헌 속 기록을 통해 계증이 어떤 요리이고, 현대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요리 방법을 소개합니다.
1. 계증이란 무엇인가?
'계증'은 글자 그대로 '닭을 찐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요리서 《규합총서》에 등장하는 궁중 및 양반가 요리로, 닭고기를 손질한 뒤 향신 채소와 함께 쪄낸 음식입니다. 오늘날의 백숙이나 찜닭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국물보다 고기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는 조리법이 핵심이었습니다.
《규합총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닭은 털과 내장을 깨끗이 하여 장과 향채를 넣고 찌되, 국물은 적게 하여 향을 보존케 하라.”
여기서 ‘향채’는 파, 마늘, 생강, 후추, 산초 등 당시 구할 수 있던 향신 재료를 의미합니다. 즉, 계증은 향을 입힌 고급 찜요리로, 왕실 연회나 잔칫날 중요한 고기 반찬으로 쓰였습니다. 닭고기 외에 잣, 밤, 대추, 버섯 등을 함께 넣어 쪘다는 기록도 있어, 맛과 영양을 모두 고려한 정성이 돋보입니다.
2. 왜 사라졌을까?
계증이 현대에서 거의 사라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조리 도구와 시간 문제입니다. 전통 방식은 대나무 찜기나 뚜껑이 있는 놋솥에 장시간 증기를 쏘여야 했습니다. 이는 현대 가정에서 재현하기 어렵고, 산업화 이후 이런 비효율적인 조리법은 점차 밀려났습니다.
둘째, 취향 변화입니다. 20세기 들어 고춧가루와 매운 양념이 대중화되면서, 담백하고 은은한 향 중심의 요리는 점차 외면받았습니다. 찜닭, 닭볶음탕처럼 강한 양념이 대세가 되면서 계증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셋째, 문헌의 단절과 레시피의 모호성입니다. 고문헌의 기록은 간결하여 정확한 양, 시간, 불 조절법이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후대에 복원을 시도해도 맛이 들쭉날쭉해 대중화에 실패했습니다.
3. 문헌 속 계증의 모습
계증은 단순히 '찐 닭'이 아니었습니다. 문헌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 재료: 산닭(방금 잡은 토종닭), 장(간장), 향채(파, 마늘, 생강, 후추, 산초), 소금, 약재(황기, 대추)
- 조리 방식:
1. 닭 손질 후 속을 비우고 향채와 약재를 넣습니다.
2. 간장과 약간의 소금으로 밑간을 합니다.
3. 대나무 찜기나 솥 위에 올려 김으로 장시간 찝니다.
- 식감: 기름이 적고 부드러운 살코기, 은은한 향이 특징이며, 국물은 거의 없습니다.
- 용도: 연회, 제사, 혼례 음식의 메인 단백질 요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국 명나라 요리서에도 계증과 비슷한 조리법이 나오는데, 그 요리를 조선 방식으로 변형해 궁중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4. 현대에서 복원하려면?
지금은 계증이 완전히 사라진 음식이지만, 현대 조리 도구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재현이 가능합니다.
<현대판 계증 레시피(응용)>
1. 재료 준비: 닭 1마리를 손질하고, 뱃속에 대추 5개, 황기 한 줌, 생강 3쪽, 마늘 5쪽, 파 뿌리 부분을 넣습니다.
2. 밑간: 소금과 간장 약간으로 밑간을 합니다.
3. 조리: 찜솥 또는 전기찜기(스팀 기능)로 1시간 이상 약한 증기로 익힙니다. 이렇게 하면 속까지 고루 익으면서 육즙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국물은 자작하게 남기고, 먹기 전 후추나 산초 가루를 살짝 뿌려 향을 더합니다.
이렇게 요리하면 기름이 적고 담백하며, 약간의 한방 향이 나는 전통풍 닭찜을 맛볼 수 있습니다.
5. 문화재적 가치
계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조선시대 식문화와 향신료 사용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 ‘찜’ 방식의 가치: 고기를 삶지 않고 증기로 익히는 찜 방식은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보존하려는 선조들의 섬세한 미감을 보여줍니다.
- 보양과 맛의 조화: 향신 채소와 약재를 병행해 보양과 맛을 동시에 노린 점은 당시 사람들이 음식을 건강을 위한 중요한 행위로 인식했음을 알려줍니다.
- 음식의 사회적 의미: 대규모 잔치에서 손님 대접용으로 쓰였다는 기록은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예절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였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계증의 특징은 오늘날의 웰빙, 저염식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충분히 대중화 가능성이 있습니다.
6. 마무리
우리가 알고 있는 찜닭이나 백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문헌 속 '계증'과 같은 고급 찜요리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라진 음식이지만 담백하고 은은한 향, 정성스러운 찜 과정은 조선의 식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잊혀진 레시피를 복원하고 현대 식탁에 다시 올리는 것은 우리 음식문화의 뿌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제가 알려드린 레시피를 통해 전통 요리 '계증'을 한 번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자료
- 《규합총서》 (빙허각 이씨, 1809)
- 《동국세시기》 (홍석모, 1849)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국립중앙박물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