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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소재 백과

조선의 옷감을 들여다보다: 왕의 곤룡포부터 백성의 모시옷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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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 한 필에 담긴 권력: 왕실 옷감의 세계

 

조선시대 왕실의 옷감은 단순한 직물이 아니라 권력과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왕이 입던 곤룡포에는 ‘오조룡문단'이라 불리는 비단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비단은 금실로 다섯 발톱의 용 문양을 짜 넣은 최고급 직물로, 오직 국왕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그 자체로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왕비의 예복에는 ‘화문단’과 같은 화려한 꽃무늬 직물이 쓰였고, 대비나 중전은 ‘진주단’, ‘능금단’ 등 특수 직물을 착용했습니다. 색상 또한 엄격히 구분되어, 왕족은 금색, 자색, 진홍색 등의 권위 있는 색을 사용했으며, 이는 곧 신분의 색깔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옷감들은 일부는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서 수입되었고, 나머지는 조선 내의 장인들이 만든 직물로, ‘침선장’이나 ’직장’이라 불리는 전문 기술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왕실의 의복은 단순히 입는 것이 아닌, 국가의 위계질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조선의 옷감을 들여다보다: 왕의 곤룡포부터 백성의 모시옷까지

 

2. 중인과 사대부의 품격, 직물로 말하다


조선의 중인층과 양반 계층은 복식에 있어서도 품격과 절제를 중시했습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한 옷감은 ‘명주’와 ‘갑사’였습니다.
명주는 가늘고 부드러운 비단으로, 일상복부터 예복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여름철에는 시원한 감촉 덕분에 선호되었습니다.

‘갑사’는 비단의 일종으로 금사나 은사를 섞어 짠 얇은 천이며, 주로 조끼나 두루마기 등의 겉옷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장식적인 목적보다는 의복을 통해 신분과 품위, 그리고 문인적 기품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사대부 여성은 특히 ‘자수’를 통해 의복에 정성과 예술을 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중인층은 고운 삼베나 면을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었으며,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긴 유교적 가치관의 반영이기도 했습니다.


3. 백성의 옷, 땀과 바람이 스민 천

 

일반 서민들이 입은 옷감은 귀족층과 달리 실용성이 최우선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재료는 ‘모시’와 ‘삼베’였습니다. 모시는 ‘저포’라고도 불리며, 뽕나무 껍질에서 실을 뽑아 만든 천으로, 통기성이 뛰어나 여름 옷감으로 적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남 나주의 ‘나주 모시’, 충청도의 ‘한산 모시’는 품질이 뛰어나 널리 알려졌습니다.

삼베는 햇볕에 강하고 마모에 잘 견뎌서 노동용 의복으로 쓰였습니다. 이 옷감은 마치 땅과도 닮아 있었고, 백성들의 삶의 땀과 흙이 배인 천이었습니다. 옷을 만드는 과정 또한 수고스러웠습니다. 삼을 삶고, 말리고, 실을 뽑아 짜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머니의 손길이 깃든 가내수공업의 결정체였습니다.

서민의 옷은 때로는 해진 옷을 기워 입고, 낡은 천을 염색하여 다시 입는 등 재활용의 미학도 담겨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면화의 보급으로 면직물도 널리 퍼졌습니다.


4. 사라진 천, 기억되어야 할 옷감의 이름들


오늘날의 섬유와 비교하면 조선시대 옷감은 생산과정부터 소재, 의미까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습니다. ‘칠보단’, ‘운문단’, ‘홍사’, ‘남잠’ 등 현재는 낯선 이름이 된 천들은, 당대 사람들의 감각과 세계관이 담긴 문화유산이었습니다.

이러한 직물들은 단순한 유물이나 전시품이 아니라, 조선인의 생활사와 정체성, 가치관을 품고 있습니다. 의복 하나에 스민 공예 정신, 사회 질서, 계절감각, 심지어 철학까지도 우리는 옷감의 실타래 속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전통 직물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나누는 일은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 조선의 옷감은 더 이상 우리 몸을 감싸지는 않지만, 그 이름과 이야기만큼은 우리의 정신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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