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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소재 백과

제2차 세계대전과 패션 소재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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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은 단지 정치와 군사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입는 옷, 사용하는 소재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섬유 산업과 패션 분야에 미친 전쟁의 영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자원 부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기존에 사용되던 천연 섬유가 군수 물자 생산으로 우선 사용되면서, 민간에서는 대체 섬유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조섬유와 기능성 소재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패션 소재 분야에 어떤 전환점을 가져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천연 섬유의 부족 – 군수산업이 바꾼 우선순위


전쟁이 시작되자 천연 섬유는 가장 먼저 군수용으로 우선 배정되었습니다.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고 기존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섬유들은 면화는 군복과 붕대, 낙하산 생산 등에 동원되었습니다. 양모는 추운 지역의 군용 코트와 담요에 쓰였고, 실크는 낙하산과 항공기 부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옷감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민간의 섬유 조달을 통제했고, 의류 제조업체는 제한된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시기 영국에서는 '유틸리티 클로딩(Utility Clothing)'이 등장합니다. 이는 최소한의 원단으로 제작된 실용적인 의류였으며, 정부가 정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들의 자유도는 낮아졌지만, 실용성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의류 스타일이 생겨났습니다. 기능 중심의 디자인이 패션계에 처음으로 정착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2. 나일론의 등장 – 인조섬유의 가능성을 열다


1930년대 말, 미국 듀폰(DuPont)사는 새로운 합성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가볍고 튼튼하며 탄력이 좋아 여성용 스타킹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일론 스타킹은 출시와 동시에 ‘혁신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불리며 빠르게 대중화되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나일론은 군용 낙하산, 로프, 텐트, 타이어 코드 등 전쟁 물자의 핵심 소재로 전환되었고, 민간용 생산은 거의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일론 스타킹은 더는 구할 수 없는 희귀품이 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 여성들은 스타킹을 대신할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다리에 갈색 화장품을 바르고, 종아리 뒤에 선을 그려 스타킹을 입은 듯한 연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패션이 전쟁과 맞닿은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3. 여성복의 변화 – 소재와 실루엣의 간결화


전쟁 중 남성들이 전장으로 나가면서 여성들은 노동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기존의 화려하고 비싼 소재는 실용적인 면, 울, 레이온 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스커트 길이는 짧아지고, 주름도 최소화되었습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원단을 절약해야하는 시대적 상황이 여성복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패션의 군더더기’가 제거된 실용적인 옷들이 등장했습니다. 주머니가 있는 치마, 넉넉한 셔츠 스타일, 어깨가 강조된 실루엣 등은 모두 전시 여성 노동자의 활동성을 고려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전쟁 이후에도 ‘모던’한 여성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섬유 부족과 배급제는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절약과 실용성을 중시하던 전시 패션의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복은 여전히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유지했으며, 소재 선택 역시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947년,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 발표한 ‘뉴 룩(New Look)’ 컬렉션은 전후 패션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풍성한 스커트, 잘록한 허리,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된 실루엣은 전시 패션의 금욕성과는 정반대의 미학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당시 여성들에게 잃어버린 우아함과 여성성을 되찾아주는 제안이었고,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사회 분위기와도 맞물렸습니다.

뉴 룩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전쟁이 끝났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소재와 스타일 모두에서 풍요와 자유를 상징했던 이 변화는, 전후 패션이 실용성을 넘어 다시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패션 소재의 전환

 


4. 기능성 소재의 태동 – 군복이 만든 기술 유산


전쟁 중 개발된 다양한 기능성 소재는 군용 의류에서 시작됐지만, 전후 민간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방수, 방한, 방염 기능이 있는 섬유는 군복의 필요에서 비롯되었지만, 이후 일상복에도 응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트렌치코트는 1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입었던 군복에서 유래했습니다. 방수성과 내구성이 특징인 이 의류는 전쟁 후에는 도시 남성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항공점퍼, 야상, 카고팬츠 등도 모두 군복에서 유래했으며, 현재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재 측면에서도, 합성섬유의 내구성과 기능성은 점점 더 주목받게 됩니다. 이후 1950~60년대에는 아크릴, 폴리에스터 등 다양한 합성섬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의류 시장의 판도를 바꾸게 됩니다.


마무리 – 전쟁이 남긴 섬유 혁신의 흔적


2차 세계대전은 패션 산업에 있어 전환의 시기였습니다. 천연 섬유의 부족은 대체 섬유의 개발을 불러왔고, 이는 인조섬유 산업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여성의 사회 진출은 실용적인 옷의 수요를 낳았고, 이에 따른 소재 변화도 뒤따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입는 다양한 옷들 속에는 전쟁이 남긴 기술과 가치관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소재와 패션의 가능성을 열었고 그로 인한 변화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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